아내가 울던 날
큰 아이가 거창고등학교에 떨어졌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막막하였습니다. 공부를 제법 잘하였습니다. 거창고등학교 정도는, 하였습니다.
아이는 중학교 삼 년 내내 일등이었습니다. 아무리 섬 학교라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일등 자리를 한번도 놓친 적이 없었습니다. 어디서든 똑똑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이를 맡아 줄 데를 찾았습니다. 기숙사가 있는 기독교 학교였습니다. 거창고등학교가 딱 맞았습니다. 막상 탈락 통보를 받고 보니 앞이 캄캄하였습니다. 다른 데는 생각지도 않고 있었습니다.
우리 섬에는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가 한 건물에 있습니다. 중학교는 초등학교 건물에 얹힌 분교였습니다.
아이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 학생이라고는 일곱 명이 전부였습니다. 중학교를 마치면 고등학교부터는 무조건 유학이었습니다. 뿔뿔히 흩어졌습니다. 제 갈 길을 가야 하였습니다. 막상 고등학교에 떨어지고 나니 갈 데가 없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싶었습니다.
아랫 섬에 고등학교가 하나 있었습니다. 면 소재지가 있는 금오도에 있는 고등학교입니다. 우리 아이 소식을 어떻게 알았는지, 연락하였습니다. 학생수 감소로 폐교 상황이라 하였습니다. 우리 아이가 와서 일곱은 채워 주어야 폐교를 막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기숙사를 주겠다 하였습니다.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방 하나 구할 처지도 아니었습니다. 그 말에 그렇게 하겠다 하였습니다.
입학식을 앞두고 가 보았습니다. 기숙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학생이 많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쓰던 교직원 숙소였습니다. 휑하니 비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방치한 흔적이 역력하였습니다. 벽지는 귀퉁이 한쪽이 뜯겼고 곰팡이가 슬어 있었습니다. 쓰레기가 이리저리 뒹굴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일이냐, 싶었습니다.
자식 중 맏이라 처음으로 내보내는 터였습니다. 기숙사용품으로 준비하여 간 것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부랴부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사 왔습니다.
아내가 걸레로 방을 닦았습니다. 걸레를 헹군 물이 금새 시커멓게 변하였습니다. 땟국물이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몇 번을 그랬을까, 아내가 걸레질을 멈추었습니다. 걸레가 지나간 자리에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방 한 칸 마련할 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날그날 살았습니다. 아이가 갈 데가 없었습니다. 이런 데 자식을 두어야 하나 싶었습니다. 서러웠습니다.
학교라는 것이 무슨, 아이 신세를 망치기로 작정하는 데 같았습니다. 청운의 꿈 같은 것은 헛소리였습니다. 제법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는데 말입니다.
아내가 우는 모습에 저도 그만 울고 말았습니다. 신세를 한탄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이것이 무엇이냐, 싶었습니다.
하나님만 보고 살았습니다. 복음의 가치 하나에 인생을 걸었습니다. 가진 것 없이 아내와 아들 둘을 데리고 섬에 들어왔습니다. 딸 둘은 섬에서 낳았습니다.
교인이라 하여야 열댓 명이었습니다. 오직 교회만 보고 살았습니다. 목회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섬에 살면서 낚시질 한번 하지 않았습니다.
섬에 들어올 때 아내에게 한 말이 있었습니다. 삼 년만 살다 나오자 하였습니다. 지금에 와서 보니 빈말이었습니다.
부귀와 영화를 바라고 목회하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젊은 날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설교자로서 오직 그 길만 가겠노라 다짐하였습니다. 그러면 가족은 지켜 주시겠지 하였습니다. 암묵적인 기대며 합의였습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를 이런 데 두어야 하나 싶었습니다. 도무지 납득하기 힘들었습니다.
입학생이 일곱이었습니다. 그 섬에 아이가 그것밖에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섬 주민조차도 아이를 육지로 내보냈습니다. 결손 가정이 아닌 바에야 대개 그랬습니다.
섬 사람마저 꺼리는 학교였습니다. 섬에서 섬으로, 그것도 아랫 섬으로 아이를 보내야 하였습니다. 부모 심정이 좋을 리 없었습니다.
방이라는 것이 무슨 헛간 같았습니다. 그런 데 아이를 혼자 두어야 하였습니다. 이제는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었습니다.
무슨 배신감 같은 감정이 울컥 치밀어 올랐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감정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그랬습니다.
한편으로,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였나 싶었습니다.
아내는 눈물을 훔치다 말고 걸레질을 이어갔습니다. 무슨 억한 심정인 것처럼 걸레질을 박박 해대었습니다. 어디다 분풀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모습에 제 마음이 복잡하였습니다. 아내에 참 많이 미안하였습니다. 죄짓는 기분이었습니다.
전도사 시절 교회에서 아내를 만났습니다. 결혼하겠다며 목사님에게 주례를 부탁하였습니다. 대뜸 하는 말이, 언제 그만둘 것이냐고 하였습니다. 결혼식을 마치자마자 그날부터 실업자 신세였습니다. 신혼생활은 그렇게 시작하였습니다.
월세방을 얻어 정리하고 나니 수중에 남은 돈이 천 원이었습니다. 그 돈으로 빵과 우유를 사서 저녁 끼니를 때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다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거기서 큰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런 삶이 순탄할 리 없었습니다. 엉겹결에 공단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또 개척, 산골이었습니다.
노인 예닐곱 명이 한 방에 모였습니다. 다들 머리가 세었습니다. 산너머 교회까지 길도 멀고 험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산길을 걸어서 다녔다 하였습니다. 몸이 쇠약하여 더는 그렇게 할 수 없다 하였습니다. 자식보다 더 어린 젊은 전도사를 앞에 두고 울먹였습니다. 예배당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그냥 주저앉았습니다.
외양간이 비어 있었습니다. 한쪽 귀퉁이에 소가 겨울나기를 하던 데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세 식구가 살림을 틀었습니다. 교회 개척이라는 것이 이런 식이었습니다.
거기서 둘째를 낳았습니다.
변화도 발전도 없었습니다. 생활고는 덤이었습니다. 교인에게는 말도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목회가 아니었습니다. 전쟁이었습니다. 오로지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보람도 없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 시달리기만 하였습니다.
지쳤습니다. 그만두었습니다. 살 길을 찾았습니다. 이제는 할 도리를 다하였다,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서울로 갔습니다. 아내와 두 아들을 처가에 맡겼습니다.
제가 하는 일에는 언제나 실패만 있었습니다. 실패는 어떻게 포장하여도 아름다울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저 피하고 싶은 일이었습니다.
빚쟁이에게 쫓기는 신세였습니다.
농가 빈집에 숨어 살았습니다. 방 한 칸에 네 식구가 살았습니다. 침구와 부엌살림이 한 방에 있었습니다.
배가 고팠습니다. 사람의 삶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렇다 치고, 아내와 두 아들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울 힘도 없었습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심정이었습니다. 차리리 섬이 나았습니다. 불러 주기라도 하였으니 말입니다. 그때 제 나이 서른 다섯이었습니다.
인생을 버리는 심정이었습니다. 신앙은 원래 이런 가치가 아니겠느냐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다짐하였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조금은 나았습니다. 미래는 포기하였습니다. 오늘 하루만 살았습니다.
산너머에 학교가 있었습니다. 학교 하나가 한 건물이었습니다. 일층에는 병설 유치원과 초등학교, 이층에는 중학교 분교가 있었습니다. 그냥 작은 섬 학교였습니다. 큰아이는 언제나 처음이었습니다. 부모와 떨어지는 것도 아이들 중 처음이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마쳤습니다. 대학에 진학하여 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지금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3학년입니다. 학자의 길을 걷겠다 하였습니다. 은천장학회에서 크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자립이 불가능한 섬 교회 목사로서 장학금은 그냥 장학금이 아니었습니다. 자녀 교육의 버팀목이었습니다.
나머지 아이는 모두 거창고등학교에 진학하였습니다. 둘째는 연세대학교 철학과에, 막내는 이화여자대학교 생명과학과로 진로를 잡았습니다.
아이가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장학금수여식에 간다 하였습니다. 제딴은 계산이 복잡하였을 것입니다. 장학금을 받으면 학비는 어떻게 충당하고, 그랬을 것입니다.
그럴 때면, 아비로서 괜스레 겸연쩍었습니다. ‘알았다. 잘 다녀오너라.’ 하고 말기에는 어딘가 부족하였습니다. 아이에게 답신을 보냈습니다.
“우리 아들, 어째 미안하구나.
머리 쓸 일도 아닌 데 머리 써야 하고···.
네 동생들 사는 방을 빼야 이사도 할 수 있는데, 그 문제로 한 달이나 시달리다 보니, 오늘 같은 날에는 아빠도 조금은 지친다.
네 나이 때,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나는 호랑이를 등뒤에 두고 뛰는 마음으로 살았지. 열심히 살았지만 남은 것은 좌절이었다.
아빠는 우리 아들에게만은 그런 세상을 겪지 않게 해야겠다 하여 이삭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장학금수여식에 간다 하니 지금 내 처지에서 좋게만은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 마음 한 구석에서 일렁인다. 장학금을 받지 못할까, 또 받으면 어떻게 맞추어야 하나, 이리저리 머리 굴려야 한다는 것이···.
이런들 저런들 그게 한 세상인 줄은 알지만, 더 편하고 더 나은 세상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아들에게 아비 구실 하나 제대로 못하는 게 아닌가 싶으니···.
살아 온 날은 그렇다 치고 살 날이 머리를 어지럽히는데, 그게 인간의 삶인 줄은 안다만, 아비로서의 삶은 이게 아닌데, 싶다. 다들 이래서 아들에게 담임목사 자리를 물려주려 하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이래서 불교에서는 출가라는 방법을 택하였는지도···.
호랑이를 등뒤로 하고 뛰던 삶이 처참하게 무너지고, 다른 삶을 살고자 했지. 엄마를 만나고 너를 낳고, 다른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 다만 내가 이 길을 왜 가야 하는지만은 명료해졌다는 거지.
네 동생 병원 다니는 일로 광주를 한번씩 다녀올 때마다 네 생각이 나는 지점이 있지. 어린 네가 기저귀에 설사를 많이 해서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운 데란다. 네 엄마가 너를 보듬고 도로 가로막 울타리를 넘어 개울가로 가서 너를 씻긴 그런 데지.
그건 너의 기억이 아니라 아비의 기억이란다. 애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리고, 지금의 네게 미안해. 아직도 나는 그 길 위에 있구나.
과거와 다르다면, 지금은 삶이 무엇인지는 알고, 살 줄은 안다는 거지. 그게 얼마나 큰 건지도 알아. 지금은 그때와 같은 고통은 없어. 삶이 막연하던 때의 공포란 이루 말할 수 없었지.
그때의 기억이 안쓰러움으로 남아 오늘의 네 모습에 투영하는 거겠지.
사람은 자기 인생에 일면 지쳐야 해. 회한과 안쓰러움이 가득한 인생을 바로볼 줄 알아야 해. 그리고 그 인생을 보듬어야 해. 먼 훗날에 이른 지금, 가족은 그러한 인생의 이야깃거리여야 해.
이 아비는 지금의 네게 그저 미안하구나. 그래서 더욱 고맙고.”
아이가 답하였습니다.
“네 아빠. 수여식 마치고 교회 가는 길이에요.
그래도 저는 좌절을 느끼진 않았어요. 배 고픈데 돈이 없지도 않았고, 무얼 하고 싶은데 모자라서 못한 것도 없었죠.
저는 아빠, 엄마에게 참 고마운 게 있어요. 저를 하나의 인격으로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점이에요. 전화 한 통 걸기 전에도 꼭 물어보시고, 나이가 어리다고, 자식이라고 본인 뜻대로 밀어붙인 적이 없었죠. 부모에게 존중 받고 배려 받으며 산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저도 어른이 되어 가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제 삶의 선택지가 줄어드는 걸 느껴요. 그만큼 이미 두 손에 쥔 것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가지지 않은 것을 보면 끝이 없지만, 가진 것을 보면 그것도 끝이 없더라고요. 저는 좋은 부모님, 건강한 가족,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뿌듯한 일을 하고 있어서 좋아요.”
아내가 울던 날, 제 인생이 서러웠습니다. ‘나라는 것’이 또 한번 무너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심도 하셨습니다.
어쩔 수 없이라도, 삶을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제 삶에서 가정과 교회가 모든 것이었습니다.
걸레질하다 말고 울던 아내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원망도 아니고 한탄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냥 삶이 서러웠을 것입니다. 그 모습이 평생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때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제 삶이 그랬습니다.
제 나이 올해 환갑입니다. 제 청춘이 이 자리에 있습니다. 윤동주의 말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많이 괴로워하였습니다. 쉽지는 않았습니다. 이 나이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지나온 세월이 아까워서라도 삶이 욕스럽지 않아야겠습니다.
저는 압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살피고 인도하셨는지, 저의 절망이 하나님께는 오히려 희망이었다는 사실을···.
2018.05.01 | 섬마을 달밭구미에서, 월전교회 목사 문경두
